[24%의 기적]살아남아 다행입니다
살아남아 다행입니다
노인생애사쓰기에 관하여
아흔 둘이라 했다. 백발을 곱게 빗어 넘겨 쪽을 진 그 노인은, 나같이 고생한 사람은 없었을 거라고 계속 뇌까렸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은 사람. 그 이전엔 이름이 없던 사람. 이 사람의 이름은 이쁜이였다. 피란민이 되어 남만주에서 걸어걸어 남대문까지 온 사람. 열 여섯 먹어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중국에서 공장일을 하다가 위안부로 끌려간다 해서 아무하고나 결혼을 해버린 사람. 그 아무하고나 결혼을 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전쟁이 터진다 해서 하염없이 걸어온 사람. 남대문에 도착했을 때는 오질라게 추워서, 등 뒤에 업은 아들을 들여다보니 얼어 죽어버린 걸 발견하고 남대문에 산처럼 쌓인 아기 무덤에 던져버린 사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에 이어 죽어버린 남편. 딸 하나 데리고 여덟 달을 빌어먹으면서 황해도로, 서울로 왔다는 사람. 내가 눈물을 흘리면 한강이 모자라고, 이틀이 모자라다고. 그래도 칠십 네 살 먹은 딸이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
서울에 도착해 동네 이장이 호구조사를 나왔다며 이름을 물었을 때. 내 이름은 김명자요. 아끼꼬. 라고 대답한 사람.
2013년 안양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났던 김명자 어르신은 4회기에 걸친 수업 내내 만주에 갔다가 아무하고나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걸어서 내려와 남대문에 죽은 아들을 묻지도 못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 이야기하다가 담당 복지사를 잡고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외에 모든 것엔 사리판단이 분명했고 기억력이 선명했다. 살면서 가장 애달팠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어르신을 보며, 가장 슬픈 이야기는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노인집단과의 첫 대면인 2013년 이 수업은 이후 다른 생애사쓰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몇 가지 교훈을 주었다. 모자에 국가에서 준 배지를 잔뜩 달고 다니는 남성노인들은 좀처럼 손을 움직이지 않고 뭔가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등을 의자에 깊이 넣고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였다. 사전에 복지관측에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참가자의 70%가 문맹이었고 나머지 30%도 문자를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문장을 완성해 한 편의 글을 써볼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후반 출생자였다. 잊고 있던 근현대사를 다시 뒤졌다. 1919년 3.1운동, 1921년 조선어 연구회가 설립되었고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했지만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을 몰고 간 일제는 1938년 한글교육을 금지시킨다. 1939년 징용령이 공포되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었다. 끝을 향해 가는 권력은 악다구니를 쓰기 마련. 내가 복지관에서 만나는 이 노인들은 그 참혹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연표를 읽은 나는 다음 수업에서 이분들에게 모두 일본어는 조금이라도 기억하지 않으시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갑자기 신 나서 자기가 기억하는 일본어와 일본노래등을 이야기했고 몇 년 전 일본 여행 갔을 때 통역이 필요 없었다는 허세까지 부렸다. 자연스럽게 소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권하자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한글말살정책의 현상이 강의장안에 고스란히 살아났다. 지금 돈으로 치면 500원씩 벌금을 걷어갔다, 우리 센세이는 때렸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그걸 고자질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일본인 센세이보다 조선 선세이가 더 나빴다. TV나 영화에서 듣고 봤던 재연들이 재연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일본어를 얼마나 혹독하게 배웠고 잘 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한국어를 배울 수 없던 상황에 대해 하나씩 점검하며 물었다. 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던 사람들이 적었고 다닌 사람들이 배운 언어는 일본어. 45년 광복을 맞아 하루아침에 선생들도 사라져 버린 형국. 학교 교육은 길을 잃었고 이들은 산으로 들로 소란스러운 정국을 구경하며 몰려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곧 전쟁, 더러 청년이 되었으면 전쟁터에 끌려 나갔고 돌아와 보니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사내들. 이들이 문맹으로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는 이들을 방첩대나 보안대라는 이름으로 불러 세웠고,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이용했다. 그러다가 어느 덧 경력도 이력도 없이 배지를 잔뜩 달고 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며,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이들의 기록되지 않은 삶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발화하지 못한 것들은 어디선가 꿈틀거리고 지표면 속으로 스며든다. 그게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야기들이 혼백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때부터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노인세대는 그 숫자도 늘어났지만 세대와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전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전쟁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면 하나의 도서관을 잃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생애사쓰기에서 많이 활용되는 글귀다. 당신의 삶의 가치가 이렇게 높습니다, 라고 참가자들을 유혹하는데 쓰인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고 발화되지 않으면 도서관은커녕 한 단의 짚만큼의 가치도 찾기 어렵다. 사람의 이야기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결국 타인들의 역할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록된 것만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라는 비약적인 말도 했다. 그래서인가,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은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고, 이들은 주변의 도움이 없이도 잘 이야기하고 기록도 잘 남긴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쓸 때 엘리트 출신들은 이미 모아둔 자기 기록을 펼쳐 보인다. 책자를 제작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기 말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들은 개인의 삶을 중단시키는 커다란 빙하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거대한 빙벽 앞에 서게 되는 사람들이 그 빙하를 돌아 나올 줄 모르고 그 앞에 갇혀 버리기도 한다. 때로 크레바스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사람의 힘이다. 돌아가는 방법을 같이 의논하고 길을 함께 찾을 수 있는 친구와 동료가 있어야 과거에 지나쳐버린 빙벽을 다시 대면할 수 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기고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것이 1차적 욕구라면 이 과정에서 노인들은 자기 삶을 재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세월을 보낸 경우가 많아, 그때 다스리지 못했던 상처에 누군가 소금을 뿌리게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나에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많은데, 이걸 타인들에게 드러냈을 때 나는 그 이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는 대부분 타의에 의한 것이고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복잡다단한 알레고리에 엉켜 발생한 일들이다. 그러나 군부독재와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국가는 개인의 불행을 모두 개인책임으로 넘겨버리는 공작에 성공했다. 이들의 불행은 “내 팔자가 기구해서”, 이거나 “내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내가 부모님 말씀을 거역해서”로 귀결된다. 이들은 자기 삶이 어디서부터 꼬여 왜 견딜 수 없으나 버텨야만 하는 고통을 감내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행이 다가왔다면 그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건은 한 가지 원인으로 시작되지 않고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원인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인간 개인사의 불행의 원인을 세밀히 찾아내긴 어렵다. 또한 그 안에서 불가역적인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닌 집단, 국가, 권력의 개입인데 노인세대는 위에 대한 저항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 자기 불행의 원인을 권력상층부에 거슬러 올라가 찾아내기 두려워한다.
구술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한국인의 서사 유형 중에 한 가지로 “신세한탄”을 꼽기도 하는데 어느 드라마에서 딸 역할을 맞은 이의 대사도 “신세한탄 아니면 자식자랑 뿐인 엄마들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했다. 남성노인들은 대체적으로 자기업적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여성노인들은 자기 신세한탄이 서사의 주조를 이룬다. 여성노인들의 경우 모든 사건과 불행의 씨앗이 “자기 팔자”에 기인한 반면 남성노인들은 “줄도 빽도 없고 운도 안 좋아서”라고 타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은 한 집안의 명운을 다르게 할 수 있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다. 쉽게 불행의 원인이 되는 반면 행복의 근원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노인들이 말하는 드센 팔자는 대부분 여자에게만 국한되는데, 집안의 불행이 자기 팔자가 드세서이거나 자기 엄마의 팔자가 드세서인 경우로 나뉜다. 남성들은 자기는 능력이 충분하지만 이 사회는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요건이 필요한데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운이 나빠서이지 자기 팔자가 드세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70대가 넘은 노인들은 행복한 것보다 불행한 기억을 더 먼저 꺼낸다. 혼자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할 때보다 여러 명이 모여 있을 때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드센 팔자”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참가자들이 같이 맞장구치며 타령의 후렴구 넘기듯 이야기와 사건의 주체를 순식간에 확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독립문 평화의 집에 모인 자서전쓰기 모임이 그러했다. 물리적 공간이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꾸기도 하는데 이곳은 가정집을 개조한 복지시설이라 추운 겨울 방에 모여 앉아 길다란 탁자를 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순사건을 겪은 노인은 그 사건으로 자기의 남매들이 거의 다 몰살당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자기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경우를 말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원망을 쉽게 쏟아내지 못할 때, 동일한 사건을 겪은 누군가가 “나쁜 놈들.”이라고 말을 내뱉는 순간, 이 사람의 신세한탄은 자기 탓이 아닌 것으로 쉽게 그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막 쏴댔다니까. 왜 쏴대는 지도 몰라. 하늘에서 쏘고 땅에서 쏘고. 피가 철철 흘러 논두렁이 온통 피야. 피가 개울이 돼서 흘러. 논마다 사람이 죽은 시체가 산처럼 쌓여. 주인 잃은 개들이 사람인지 뭔지 모르고 막 뜯어먹어. 나는 그래서 지금도 개가 무서워.”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트라우마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 엄청난 이야기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생애사쓰기에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사건들은 대부분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상처가 된다. 그럴 때 같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그 고통을 넘어갈 힘을 얻는다.
동대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자기 삶을 기록하라고 전해준 노트를 앞에 두고 수업이 끝났는데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이룬 것이 없고, 내 인생은 다 실패예요.” 그는 나에게 말했다.
“여기 책에 있는 글도 그렇고, 방금 읽은 것도 그렇고, 이렇게 사람들이 살다보면 뭐 하나라도 이룬단 말이죠. 나는 전혀 그런 것이 없어요.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예요. 정말이에요. 나는 다 실패. 모든 게 실패.”
나는 그에게 몸을 가까이 기울이고 말했다.
“아버님, 우리 모두 다 죽잖아요. 인생에 성공이 어디 있어요. 모두 다 죽는다는 말은 모두 다 실패한다는 말 아닌가요? 어떻게 실패했는지 알려주세요. 실패인지 아닌지 같이 봐요.”
이 노인을 만날 때는 한참 국정농단으로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성공한 모든 자들은 청문회장에 있다고 그에게 농을 던졌고 그가 슬며시 웃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실패와 성공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했고,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팔자가 드세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노인들의 체념은 누가 그 기준을 정해준 것일까. 하루 종일 시끄러운 소리로 떠드는 미디어인가, 그들이 받았던 교육과 사회적 통념인가.
모두가 이병철처럼, 정주영처럼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고 권력과 적당히 결탁해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을 자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이 사회의 성공이라면, 이들은 모두 성공하지 못한 것이 맞다. 그러나 한 시절 열심히 살고 가끔 행복한 순간을 되새기며 그래도 그때는 좋았다고 회고할 수 있고, 지나간 시절을 되든 안되든 기록해보이겠다고 눈비를 맞아가며 초등학생용 공책을 들고 생애사쓰기에 모여오는 이 노인들의 삶이 과연 실패인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세상의 불평등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이들은 부조리와 국가의 폭력속에서도 진득하게 살아남았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노년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은 성공이다. 돌아볼 용기가 있는자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한다. 생애사쓰기에 참가했다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풀었더니 여섯 살에 세상을 뜬 어머니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수업에 나올 수 없다며 울며 전화한 여성 노인이 있었다. 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그분은 해결하지 못한 빙벽을 만나고 만 것이다. 노인이 되었다고 풀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은 아니다.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한 것들은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돌덩이가 된다. 인간은 치유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대신 나누는 것이다. 글로 써서, 말로 풀어서, 기록으로 남기면 마치 내 과거의 일부분을 떼어 다른 종이에 붙이고 그 사연이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나를 짓누르는 바위덩어리를 응시하고 그 바위를 묘사하여 종이에 적는 일. 그래서 내 몸으로부터 떼어놓는 상징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도 여생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
삶을 돌이키는 것은 정리하여 끝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번쯤 객관화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져오는 수확이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곡식을 잘 일으켜 세우듯이, 지지대를 받쳐 묶어주듯이,지나간 사연들을 어루만진다. 삶의 끝이 어디 있고 시작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 보는 것이다. 수고 많았다고. 잘 살아왔다고. 나를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2018년 8월. 글/ 이하나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