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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의 기적> 웰다잉이란 무엇인가

    24%의 기적 ‘웰다잉’ 이란 무엇인가 웰다잉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점 가판대에는 죽음에 관한 책들이 부쩍 늘었고 지난해에는 ‘웰다잉시민운동’도 창립했다. 이는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노인인구가 증가한다. 저출산으로 돌봄과 장례를 감당할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 죽음이 시시각각 우리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산업화와 신자유주의에 내던져진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야말로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였던 시절이었다. 살아남기도 바쁜 삶에 죽음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결코 ‘죽음의 질’이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험악하고 끔찍한 죽음을 접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부음사회’라 일컬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 ‘웰다잉’의 문제는 현실이다. 웰다잉이란 무엇인가. ‘웰다잉’은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뜻 깊게 보낼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령화에 따른 각종 질병의 증가, 가족 해체와 1인 가구의 확산으로 급증하고 있는 고독사 등이 웰다잉 트렌드를 이끄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 내용은 <트렌드 지식사전2>(인물과사상사)의 지은이 김환표의 설명이다. 계속해서 그는 웰다잉에 대한 이런저런 현상을 소개한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맞이하는 죽음을 위한 ‘웰다잉 10계명’도 등장하고 있다. 2013년 3월 6일 방송된 SBS CNBC의 <집중분석 takE>는 ‘웰다잉 10계명’으로, 첫째 버킷 리스트 작성하기, 둘째 건강 체크하기, 셋째 법적 효력 있는 유언장 자서전 작성하기, 넷째 고독사 예방하기, 다섯째 장례 계획 세우기, 여섯째 자성의 시간 갖기, 일곱째 마음의 빚 청산하기, 여덟째 자원 봉사하기, 아홉째 추억 물품 보관하기, 열째 사전의료의향서 작성하기 등을 제시했다. 웰다잉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묘비명을 지어보고, 삶을 정리하는 기록을 남기고, 죽음의 공간인 ‘관’에 실제 들어가 보는 식이다. 한화손해보험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년을 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는 동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2009년부터 ‘하늘소풍이야기’이라는 웰다잉 준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 노인종합복지관은 2012년부터 ‘임종 준비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 1월부터 강원웰다잉연구소는 강릉노인종합복지관과 함께 ‘인생 100세 시대, 행복한 삶 · 아름다운 마무리’를 주제로 매월 두 차례씩 장례 계획 세우기, 유언과 상속, 장기 기증, 나의 묘비명, 나의 사망기 등을 노인들이 직접 작성 · 체험토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웰다잉과 관련한 시민운동도 등장하고 있다. 2013년 7월 1일 출범한 ‘한국 1인가구연합(singlesunion.or.kr)’은 가족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후견 지원, 임종기 보살핌 등 무연사(연고가 없는 죽음) 방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만 45세 이상 65세 미만의 홀로 사는 사람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회원이 되면 장례 방식, 장지, 공부 정리, 유품 처리, 영정 사진과 신변 정리를 위한 ‘엔딩 노트’와 유산을 위주로 한 유언장 작성을 할 때 변호사들의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18년 12월 28일 창립한 ‘웰다잉시민운동’은 창립선언문에서 웰다잉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생명마무리. 육제적 생명의 마무리를 위해서는 생명의 소멸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을 실천을 통해 바꾸기를 희망한다. 둘째, 관계 마무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오랫동안 삶을 같이 해온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일을 실천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 셋째, 유산 마무리.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아름답게 마무리는 하는 일이다. 우리 조합이 걸어온 지난 10년은 ‘웰다잉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모색과 도전의 시간이었다. 부패하고 혼탁한 상조시장을 바꾸기 위해 정직하고 깨끗한 협동조합형 장례사업을 시작하였고, 허례허식 없는 ‘작은장례’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가족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이들의 장례를 지원하고, 기억노트 쓰기 등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해 왔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과 존엄한 죽음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웰다잉 운동은 새로운 차원의 문화운동이다. 이 운동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전에 준비하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육체를 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공동체에 나누며, 타인의 죽음을 외면하기 않기 위해 연대하는 것. 우리는 그것이 ‘웰다잉’이라고 믿는다. 죽음을 대하는 수준을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웰다잉은 결코 개인의 차원에서,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다. 공동체의 꾸준한 준비와 다양한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 조합은 앞으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려 한다. 죽음이 아름다우면 삶도 그러하리라 굳게 믿기에.      

    handurae 작성일: 2019-05-14 조회:462

    <책소개> 죽음이 삶에게 안부를 묻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 그리고 잘 보내는 일에 대하여 장례지도사가 맞이하고 배웅하는 죽음의 언어 상호부조의 마음을 담아 치른 장례 풍경 죽음을 업으로 안고 사는 사람의 사회적 역할, 기여 생명의 순환은 불가사의하다. 영겁의 세월을 더한들 삶과 죽음의 순환을 알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깨달음이다. 봄여름 가을겨울, 작은 씨앗이 싹트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고 시들고 지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죽음은 소멸이지만 거대한 관계의 사슬로 보면 변화이다. 죽음의 눈으로 삶을 보면 아름다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이들의 오늘이 오롯이 놓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있는 시간은 죽어가는 순간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예기치 못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적극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더 용기 있고 생명력 넘치는 이유와 같다. 매일 죽음을 맞는 장례지도사의 일상을 보고, 그들의 고민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추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가 치러온 죽음을 소환했다. 그 시간 내내 무겁고 슬펐지만, 마침내 서로가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지난 10년 동안 만난 산 이와 죽은 이의 이야기이다. 병마와 노환에 시달리다 힘겹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쓸쓸한 죽음, 타워크레인에 깔려 조각난 육신, 연달아 가족 셋을 떠나보낸 유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농민, 한국전쟁 때 학살당한 민간인들. 사랑과 후회, 아픔과 고통, 외로움과 가난, 폭력과 저항에 대한 기록이며 평범한 이웃의 최후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에는 모두 스무 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장은 장례지도사가 맞이하고 배웅한 죽음의 언어를, 2장은 상호부조의 마음을 담은 조합원이 치른 장례의 풍경을, 3장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기여의 노력을 글로 담았다.   1장 영결永訣의 아침 -오늘도 죽은 이를 만나러 갑니다 오늘도 죽은 이를 만나러 간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이와의 약속이 더 많다. 망자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한때 따뜻한 피가 돌았을 부드러운 육신. 이제 그는 물체에 더 가까운 존재이다. 그와 나 사이 적요寂寥가 놓인다. 고요 속에서 그 에게 입혀지는 수의의 서걱거림을, 육신의 마지막 소리로 듣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죽은 이가 산 이에게 숨결처럼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하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깊은 침묵이 위로를 전한다. 이럴 때면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전의 앞뒷면 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명은 죽음과 붙어 다닌다. 오늘도 죽은 이를 만나러 간다. 또 어떤 이를 만날지 궁금하다. 오늘 떠나보내면 내일 새로운 이를 만나고…. 그러다 어느 날 때가 오면 나도 죽은 이가 되어 산 이가 만나러 오는 순간이 오겠지. 가을겨울 지나 봄여름 오듯 그렇게. 2장 조등弔燈을 켜다 - 당신과 이별할 시간입니다 죽음을 맞는 일은 슬프고 암담하다. 생성과 소멸이 자연의 이치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죽음 앞에서 비루해지지 않기를, 두려움을 몸 안에 가두고 소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구한다. 삶의 지혜를 갖춰 죽음을 맞이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배우고 준비할 시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소멸의 외형 안에는 숙려의 깊이, 슬픔의 무게가 담겨있다. 존엄한 삶이 존엄한 죽음을 예비한다. 건강할 때 죽음을 맞을 마음도 다지며 준비해야 할 일이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보내야 한다. 삶의 시간이 누적될수록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부고에 놀라지 않는 나이, 이별의 시간이 자연스러워진다. 보내는 일의 종착점은 떠나는 시간일 테니 그 전까지는 마음을 담아 위로를 전하려 한다. 3장 곡비哭婢가 되어 -슬픔이 슬픔에게 어느 순간 멈추어버리고 만 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살아서 지옥을 만나는 순간이다. 세월호의 꽃다운 아이들, 아름다운 소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할머니들, 한국전쟁 때 아무 이유도 없이 학살당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 국가폭력에 스러져간 노동자 농민들, 평생을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가난한 이웃들…. 채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만난다. 통곡하는 이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길 바랐다. 남아있는 이들이 무겁게 짊어졌다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을 살아낼 일이다. 살아서 지옥문을 여는 이들을 위해 곡을 하는 마음이, 그 수고로움을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부해진다 믿는다. 그들을 애도하는 일은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위로이다.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며 오늘을 사는 지혜를 깨우치고 싶어 하는, 죽음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 차례 | 들어가며 죽음의 눈으로 삶을 본다면 영결永訣의 아침 오늘도 죽은 이를 만나러 갑니다 죽음이 삶을 위로한다_박태호 | 당신은 꽃_김윤식 | 허공에 흔들리는 ‘바이킹’처럼_최대영 | 보통 사람들의 장례_김윤식 | 예고 없는 이별_박태호 | 시신을 깁다_김윤식 | 죽음의 모양_박태호 | 나를 찾아오세요_최대영 조등弔燈을 켜다 당신과 이별할 시간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나에게 남았습니다_김상현 | 굿바이 맘_이하나 | 가슴에 묻고 자연에 뿌리다_김경환 | 삶에서 죽음 익히기_전희식 | 장례의 풍경_유종오 | 어머니를 잃다_이하나 곡비哭婢가 되어 슬픔이 슬픔에게 추모식장의 맨발들_우은주 | 어머니, 이 세상에 다시 오지 마세요_신명철 | 광장에 쓰러져 촛불로 살아나다_박태호 | 죽음을 기억하라_한석호 | 기억노트, 삶을 기록하다_우은주 | 아버지의 유언_임종한

    handurae 작성일: 2019-01-17 조회:499

    <메멘토 모리> 허공에 흔들리는 '바이킹'처럼

    똑바로 서 있지도 못하는 빈 소주병, 구겨진 맥주캔, 엉망진창으로 흩어져 있는 옷가지, 꽁초가 가득한 재떨이, 정리되지 않은 살림살이. 라면 국물이 말라붙은 냄비나 찌꺼기가 남아있는 컵라면, 몇 달 동안 개지 않았을 법한 이불, 구석구석 붙어 있는 찌든 때. 수개월간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 심란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집을 버리고 잠시 도망쳤거나, 수개월간 사람이 살았다면 그 풍경 그대로가 그 사람의 마음이었을 법한 풍경이 있다. 그곳에 없었다면 자기 집을 버린 셈이고 그 곳에 있었다면 세상을 버린 셈이 된다. 스스로 마음을 버렸거나 타인에게 가닿지 않은 마음이 버려졌을 것이다. 대부분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방 한 칸이다. 아무리 좁은 방이라도 그 중에 가장 웅크리기 좋은 공간이 있다. 망자들은 구석을 찾아 숨어든다. 침대와 벽의 사이라든가, 방의 가장 구석이라든가, 고시텔의 옷장 안이라거나.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힌 지 오래되었을지도 모르는 삶. 포기해 버린 것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넓지도 않은 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있었을 망자의 삶이 날것의 살풍경으로 다가온다. 죽음 직전의 고뇌는 벽마다 새겨져 있고 위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이 방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을 때, 피할 곳도 찾지 못한 사람들이 혼자 살던 방에서 삶을 마감했으리라.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날선 칼날처럼 나에게 와서 꽂힌다. 방에 펼쳐진 모든 것이 망자의 마음이었다. 쓰러진 마음, 흐트러진 마음, 정리되지 못한 마음, 엉망진창인 마음. 흔히 말하는 주거취약의 현장이다. 사는 곳이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자기 마음을 놓을 만한 공간이었으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텐데. 최초의 발견자가 방문을 따고 들어왔을 때는 더 깊은 암울이 그를 뒤덮었을 것이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먼저 문을 열어주면 나는 돌아가신 분의 유해를 수습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 일은 내 일이 아니다. 나는 타인의 영역에 개입하고 싶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알 필요도 없다. 내가 맡은 일만으로도 일은 넘친다.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해도 모자랄 수 있다. 내가 이 사람의 삶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이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지 오래된 사람은 어쩌면 이미 사회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죽어버린 사회적 영혼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육체도 죽기로 결심했을지 모른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지만 자기 방에서 혼자 생을 뒤에 두고 떠나버린 사람들만큼 힘들 수 있을까. 힘들다는 걸 비교할 수 있는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연고 고독사를 고립사로 불러야 한다는 말도 있고, 사회적 죽음이라는 말도 있다. 어려운 이야기들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들이 그저 지독하게 외로웠다는 것만 알겠다. 혼자 죽은 사람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더 이상 삶을 지탱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벌레가 기어 다니고 부패한 시신에서 액체가 흐르고, 원형을 잃은 유해를 수습하는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내가 어려웠던 것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끔찍한 풍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으로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는 매일 매일에 있었다. 죽은 사람은 날 힘들게 한 적 없다. 그들은 움직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니까. 나를 힘들게 하거나 꿈속에서도 짓누르는 것은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더 살고자 하는, 더 갖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수습해야 할 유해가 없으면 장례식장의 영업 손실이 난다고 했다. 사장은 대놓고 망자가 없어 돈을 못 번다고 말하지 못하니 애꿎은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쉽게 웃지도 못하는 직업인데 한 사람의 죽음이 돈으로 연결된다는 게 더 끔찍했다. 구더기가 들끓는 시신보다 참혹한 일이다. 돈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이렇게 근무환경이 좋고, 이렇게 급여가 많고, 이렇게 조건을 잘 갖춰놓았는데 왜 자기한테 돈을 더 벌어다주지 않느냐는 거였다. 매일 죽음을 당면하고 엄숙하게 예를 갖춰 한 사람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는 일은 숭고한 일이지만 그곳도 엄연한 직장이라는 조직이었다. 서비스업이었고 그래서 평가도 필요했다.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할 때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동료도 친구도 없었다. 모두들 나에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거나 꺼림칙한 시선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스스럼없이 하느냐”고 말하곤 했다. 대단하거나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내 직업이기 때문에 해왔을 뿐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망자를 병원 장례식장에 모시면 굽은 채 굳어버린 육신을 일일이 펴야 했다. 어딘가 부서지거나 찢어진 시신도 원형에 가깝도록 꿰매고 맞췄다. 가장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야 하는 게 장례지도사가 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웅크린 시신의 다리를 펼 때, ‘찌지직’ 하고 굳어버린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간암이나 간경화, 또는 몸의 병이 깊었지만 치료받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은 염습을 하면서 계속 복수復水가 뚝뚝 흐르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죽음을 실감한다. 그들의 육신이 살아 있었다는 걸 몸이 말해준다. 이 육신은 영혼을 가졌던 사람의 것이라는 걸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다. 혼자 죽어 발견된 사람들은 대부분 24시간을 넘긴 채 냄새를 풍겨서 자신의 사망을 주변에 알렸다. 병원으로 옮기면서 경찰이 그들의 유족을 찾는다.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된 가족들은 시신을 인계받아 장례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망자가 미워서가 아니다. 대부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례를 잘 치러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외롭게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가족이 없고 친구나 먼 친척에게 연락이 닿는 경우도 있다. 전화상으로만 시신인수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불쾌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눈물을 흘리며 헐레벌떡 나타나는 유가족이나 친구도 있다. “안타까운 사람아, 어찌 이리 외롭게 갔는가.” 곡을 하던 어떤 망자의 친구는 장례를 치러주고 싶지만 자기는 가진 게 없다며 서럽게 오랫동안 울다 돌아갔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나누거나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자칫하면 내 마음도 무너질지 모른다. 매일 대면하는 죽음과 모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슬픔을 오롯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이 망자에 관련한 행정절차를 거들어준다. 국가에서 주는 75만 원가량의 장례비로 시신을 곧게 펴고 떨어져 나간 부분을 만들어서라도 붙인 다음, 관에 넣어 이들을 싣고 화장터로 간다. 오래전 내가 일하던 그 장례식장은 화장터로 가서 화장을 끝낸 뒤 유골을 뿌리는 일까지 하고 돌아와야 했다. 다른 장례지도사보다 일의 절차가 복잡하고 길었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이라는 특성 때문에 중국교포들의 장례도 많았다. 대부분 변사자로 발견되는 경우였다. 변사자는 사고, 자살, 살인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 곳에서 죽은 조선족 교포들은 굳이 대림동으로 망자를 모셔와 장례를 치렀다. 유족이나 한국에서 같이 살았던 친구들이 한국어와 한국의 장례절차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의 장례를 치르고 화장터까지 따라가 화장 절차와 유해를 받는 것까지 도왔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한 죽음이 다섯 단계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을 거친다고 한다. 삼일간의 장례식에서 유족들은 다섯 가지 단계를 다 거쳐야 망자를 잘 보내줄 수 있다. 감정이 정말 순차적으로 변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유족들이 부정하고 분노하는 단계에서 출발해 죽음을 인정하고 애도하며 망자를 보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일하되 눈에 띄지 않는 인간이어야 했고, 그들의 분노와 우울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누군가 나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나는 쉽게 힘들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왜 힘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죽은 사람들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바이킹’이라고 불렀다. 바이킹이 그런 모양의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그 놀이기구를 타면서 잠시나마 모험의 세계로 떠난다며 즐거워했다. 작은 트럭 위에 설치된 바이킹에 앉으면 하늘 높이 배가 올라갔다가 떨어져 내려왔다. 그 놀이기구에서 내 누나의 친구가 떨어져 죽었다. 나는 그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를 나이였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마음이 허구의 배처럼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왔다. 슬픔도 흔들리며 왔다 간다. 나의 마음도 망자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이 일이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 언제쯤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글/ 최대영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포계팀 과장

    handurae 작성일: 2018-11-07 조회:768

    <24%의 기적> 한겨레두레협동조합 현안...2018년 협동조합제도개선 10대 과제에 선정

    ‘2018년 협동조합 제도개선 10대 과제 토론회’가 10월 4일(목) 오후 2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소회의실에서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경기도따복공동체지원센터,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서형수국회의원실의 공동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 세종시 등 전국에서 협동조합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하였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는 협동조합 제도개선 10대 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올 초부터 협동조합 법·정책 전문가, 당사자, 경기도따복공동체지원센터, 한국협동조합연구소 등과 검토·연구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과제를 단순히 모으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개선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들은 먼저 실제 협동조합이 설립·운영 부분에서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8월 한 달 동안 '협동조합 제도개선사례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렇게 총 60여 건의 현장사례를 모았고 전문가 간담회 등을 선정 기준을 정했다. 이는 시급성, 효과성(영향정도), 난이도(협동조합진영 내외부의 동의 가능성) 등이다. 이날 토론회는 유영우 회장(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고 변철환 박사(재단법인 중앙자활센터팀장)가 주제 발표에 나섰다. 이어 김기태 소장(한국협동조합연구소), 정순문 변호사(재단법인 동천), 김경환 상임이사(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강민수 이사장(쿱비즈협동조합)의 지정 토론이 이어졌다. 2018년 협동조합 제도개선 10대 과제로, 협동조합 기본법 개정사항으로는 ①서면투표‧전자투표제도 도입, ②성립정족수 불산입제도 도입, ③해산간주‧해산명령제도 도입을 선정하였다. 진입장벽 해소 방법으로는 ④협동조합의 장례사업 인정, ⑤영농‧영어협동조합의 농어업경영체 인정, ⑥안마사 협동조합의 인정, ⑦협동조합 액설러레이터 인정을, ⑧운영 활성화를 위한 요구사항으로는 등록면허세 감면, ⑨공증면제, ⑩지방자치단체의 협동조합에 대한 출자‧출연 인정 등을 선정하였다. 변철환 박사는 주제 발표를 통해 “법제도 개선은 의미성, 체계정당성,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확보가 중요하다”며 “협동조합에 대한 법제를 설계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협동조합의 본질과 그 법제의 특수성을 전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환 상임이사는 현재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현재 상법상 회사만 운영할 수 있는 ‘선불식할부거래업(장례업)’을 협동조합에도 허용하고 별도의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동조합을 부실한 상조회사와 같이 묶어 동일하게 자본금 3억원으로 15억원 상향조정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라며 “사회적경제 활성화라는 시대의 흐름과 국정운영방향에 맞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는 2018년 협동조합제도개선 10대 과제를 정부부처와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전달하고 제도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협동조합 3법 개정안 대표발의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성남 분당을, 국회 정무위원회)은 10월 15일 협동조합 금융업 및 보험업 허용을 위한 협동조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협동조합 3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였다. 협동조합이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경에는 금리가 낮은 시중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운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재무적 요소 중심의 시중은행의 대출 기준으로는 협동조합의 신용도는 저평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협 또한 개인조합원 대출 중심인데다 협동조합형 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극히 낮고, 금리도 일반은행 보다 높아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선진국처럼 협동조합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협동조합 자금조달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이자 협동조합 경제생태계를 튼튼히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협동조합에게 액셀러레이터 및 중소기업상담회사로 등록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2014년 중소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협동조합이 중소기업의 범위에 포함되었으나 현행법에서는 상법상 회사에게만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협동조합이 배제되어 있다. 할부거래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협동조합이 조합원 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상조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행법에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의 성격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협동조합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현행법에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등록하려는 자는 「상법」상 회사로서 자본금이 15억원이상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선불식 할부거래업자의 성격을 회사로 한정함에 따라 협동조합이 조합원 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상조서비스 등 선불식 할부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른 협동조합, 협동조합연합회, 사회적협동조합 및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로서 출자금이 3억 원 이상이면서 조합원이 1천명 이상인 경우 이 법에 따른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협동조합이 선불식 할부거래 방식으로 조합원 또는 취약계층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안 제18조제1항 및 제19조). 일부개정법률안 공동발의에는 이찬열, 안호영, 임종성, 윤후덕, 강병원, 권칠승, 김경협, 정춘숙, 강훈식 의원이 참여하였다.

    handurae 작성일: 2018-11-07 조회:579

    [24%의 기적]살아남아 다행입니다

    살아남아 다행입니다 노인생애사쓰기에 관하여 아흔 둘이라 했다. 백발을 곱게 빗어 넘겨 쪽을 진 그 노인은, 나같이 고생한 사람은 없었을 거라고 계속 뇌까렸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은 사람. 그 이전엔 이름이 없던 사람. 이 사람의 이름은 이쁜이였다. 피란민이 되어 남만주에서 걸어걸어 남대문까지 온 사람. 열 여섯 먹어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중국에서 공장일을 하다가 위안부로 끌려간다 해서 아무하고나 결혼을 해버린 사람. 그 아무하고나 결혼을 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전쟁이 터진다 해서 하염없이 걸어온 사람. 남대문에 도착했을 때는 오질라게 추워서, 등 뒤에 업은 아들을 들여다보니 얼어 죽어버린 걸 발견하고 남대문에 산처럼 쌓인 아기 무덤에 던져버린 사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에 이어 죽어버린 남편. 딸 하나 데리고 여덟 달을 빌어먹으면서 황해도로, 서울로 왔다는 사람. 내가 눈물을 흘리면 한강이 모자라고, 이틀이 모자라다고. 그래도 칠십 네 살 먹은 딸이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 서울에 도착해 동네 이장이 호구조사를 나왔다며 이름을 물었을 때. 내 이름은 김명자요. 아끼꼬. 라고 대답한 사람. 2013년 안양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났던 김명자 어르신은 4회기에 걸친 수업 내내 만주에 갔다가 아무하고나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걸어서 내려와 남대문에 죽은 아들을 묻지도 못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 이야기하다가 담당 복지사를 잡고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외에 모든 것엔 사리판단이 분명했고 기억력이 선명했다. 살면서 가장 애달팠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어르신을 보며, 가장 슬픈 이야기는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노인집단과의 첫 대면인 2013년 이 수업은 이후 다른 생애사쓰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몇 가지 교훈을 주었다. 모자에 국가에서 준 배지를 잔뜩 달고 다니는 남성노인들은 좀처럼 손을 움직이지 않고 뭔가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등을 의자에 깊이 넣고 이야기를 듣겠다는 자세였다. 사전에 복지관측에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참가자의 70%가 문맹이었고 나머지 30%도 문자를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문장을 완성해 한 편의 글을 써볼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후반 출생자였다. 잊고 있던 근현대사를 다시 뒤졌다. 1919년 3.1운동, 1921년 조선어 연구회가 설립되었고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했지만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을 몰고 간 일제는 1938년 한글교육을 금지시킨다. 1939년 징용령이 공포되고 1940년 창씨개명이 실시되었다. 끝을 향해 가는 권력은 악다구니를 쓰기 마련. 내가 복지관에서 만나는 이 노인들은 그 참혹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연표를 읽은 나는 다음 수업에서 이분들에게 모두 일본어는 조금이라도 기억하지 않으시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갑자기 신 나서 자기가 기억하는 일본어와 일본노래등을 이야기했고 몇 년 전 일본 여행 갔을 때 통역이 필요 없었다는 허세까지 부렸다. 자연스럽게 소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권하자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한글말살정책의 현상이 강의장안에 고스란히 살아났다. 지금 돈으로 치면 500원씩 벌금을 걷어갔다, 우리 센세이는 때렸다,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그걸 고자질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일본인 센세이보다 조선 선세이가 더 나빴다. TV나 영화에서 듣고 봤던 재연들이 재연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일본어를 얼마나 혹독하게 배웠고 잘 했는지를 말했다. 나는 한국어를 배울 수 없던 상황에 대해 하나씩 점검하며 물었다. 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던 사람들이 적었고 다닌 사람들이 배운 언어는 일본어. 45년 광복을 맞아 하루아침에 선생들도 사라져 버린 형국. 학교 교육은 길을 잃었고 이들은 산으로 들로 소란스러운 정국을 구경하며 몰려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서 곧 전쟁, 더러 청년이 되었으면 전쟁터에 끌려 나갔고 돌아와 보니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던 사내들. 이들이 문맹으로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는 이들을 방첩대나 보안대라는 이름으로 불러 세웠고,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이용했다. 그러다가 어느 덧 경력도 이력도 없이 배지를 잔뜩 달고 노인이 되어 앉아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며,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이들의 기록되지 않은 삶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발화하지 못한 것들은 어디선가 꿈틀거리고 지표면 속으로 스며든다. 그게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야기들이 혼백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때부터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노인세대는 그 숫자도 늘어났지만 세대와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전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전쟁 세대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한 명의 노인이 사라지면 하나의 도서관을 잃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생애사쓰기에서 많이 활용되는 글귀다. 당신의 삶의 가치가 이렇게 높습니다, 라고 참가자들을 유혹하는데 쓰인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고 발화되지 않으면 도서관은커녕 한 단의 짚만큼의 가치도 찾기 어렵다. 사람의 이야기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결국 타인들의 역할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록된 것만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라는 비약적인 말도 했다. 그래서인가,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은 스스로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고, 이들은 주변의 도움이 없이도 잘 이야기하고 기록도 잘 남긴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쓸 때 엘리트 출신들은 이미 모아둔 자기 기록을 펼쳐 보인다. 책자를 제작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기 말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들은 개인의 삶을 중단시키는 커다란 빙하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거대한 빙벽 앞에 서게 되는 사람들이 그 빙하를 돌아 나올 줄 모르고 그 앞에 갇혀 버리기도 한다. 때로 크레바스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사람의 힘이다. 돌아가는 방법을 같이 의논하고 길을 함께 찾을 수 있는 친구와 동료가 있어야 과거에 지나쳐버린 빙벽을 다시 대면할 수 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기록을 남기고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것이 1차적 욕구라면 이 과정에서 노인들은 자기 삶을 재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세월을 보낸 경우가 많아, 그때 다스리지 못했던 상처에 누군가 소금을 뿌리게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나에겐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많은데, 이걸 타인들에게 드러냈을 때 나는 그 이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는 대부분 타의에 의한 것이고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복잡다단한 알레고리에 엉켜 발생한 일들이다. 그러나 군부독재와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국가는 개인의 불행을 모두 개인책임으로 넘겨버리는 공작에 성공했다. 이들의 불행은 “내 팔자가 기구해서”, 이거나 “내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내가 부모님 말씀을 거역해서”로 귀결된다. 이들은 자기 삶이 어디서부터 꼬여 왜 견딜 수 없으나 버텨야만 하는 고통을 감내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행이 다가왔다면 그 원인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건은 한 가지 원인으로 시작되지 않고 수십 가지, 수백 가지의 원인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인간 개인사의 불행의 원인을 세밀히 찾아내긴 어렵다. 또한 그 안에서 불가역적인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닌 집단, 국가, 권력의 개입인데 노인세대는 위에 대한 저항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아, 자기 불행의 원인을 권력상층부에 거슬러 올라가 찾아내기 두려워한다. 구술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한국인의 서사 유형 중에 한 가지로 “신세한탄”을 꼽기도 하는데 어느 드라마에서 딸 역할을 맞은 이의 대사도 “신세한탄 아니면 자식자랑 뿐인 엄마들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말했다. 남성노인들은 대체적으로 자기업적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여성노인들은 자기 신세한탄이 서사의 주조를 이룬다. 여성노인들의 경우 모든 사건과 불행의 씨앗이 “자기 팔자”에 기인한 반면 남성노인들은 “줄도 빽도 없고 운도 안 좋아서”라고 타자에게 그 원인을 돌리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은 한 집안의 명운을 다르게 할 수 있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정권은 가지지 못했다. 쉽게 불행의 원인이 되는 반면 행복의 근원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노인들이 말하는 드센 팔자는 대부분 여자에게만 국한되는데, 집안의 불행이 자기 팔자가 드세서이거나 자기 엄마의 팔자가 드세서인 경우로 나뉜다. 남성들은 자기는 능력이 충분하지만 이 사회는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요건이 필요한데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운이 나빠서이지 자기 팔자가 드세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70대가 넘은 노인들은 행복한 것보다 불행한 기억을 더 먼저 꺼낸다. 혼자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할 때보다 여러 명이 모여 있을 때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드센 팔자”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참가자들이 같이 맞장구치며 타령의 후렴구 넘기듯 이야기와 사건의 주체를 순식간에 확장해 버리기 때문이다. 독립문 평화의 집에 모인 자서전쓰기 모임이 그러했다. 물리적 공간이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꾸기도 하는데 이곳은 가정집을 개조한 복지시설이라 추운 겨울 방에 모여 앉아 길다란 탁자를 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순사건을 겪은 노인은 그 사건으로 자기의 남매들이 거의 다 몰살당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자기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아버린 경우를 말했다. 국가권력에 대한 원망을 쉽게 쏟아내지 못할 때, 동일한 사건을 겪은 누군가가 “나쁜 놈들.”이라고 말을 내뱉는 순간, 이 사람의 신세한탄은 자기 탓이 아닌 것으로 쉽게 그 경계를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막 쏴댔다니까. 왜 쏴대는 지도 몰라. 하늘에서 쏘고 땅에서 쏘고. 피가 철철 흘러 논두렁이 온통 피야. 피가 개울이 돼서 흘러. 논마다 사람이 죽은 시체가 산처럼 쌓여. 주인 잃은 개들이 사람인지 뭔지 모르고 막 뜯어먹어. 나는 그래서 지금도 개가 무서워.”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트라우마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 엄청난 이야기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생애사쓰기에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사건들은 대부분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상처가 된다. 그럴 때 같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그 고통을 넘어갈 힘을 얻는다. 동대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자기 삶을 기록하라고 전해준 노트를 앞에 두고 수업이 끝났는데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이룬 것이 없고, 내 인생은 다 실패예요.” 그는 나에게 말했다. “여기 책에 있는 글도 그렇고, 방금 읽은 것도 그렇고, 이렇게 사람들이 살다보면 뭐 하나라도 이룬단 말이죠. 나는 전혀 그런 것이 없어요.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실패예요. 정말이에요. 나는 다 실패. 모든 게 실패.” 나는 그에게 몸을 가까이 기울이고 말했다. “아버님, 우리 모두 다 죽잖아요. 인생에 성공이 어디 있어요. 모두 다 죽는다는 말은 모두 다 실패한다는 말 아닌가요? 어떻게 실패했는지 알려주세요. 실패인지 아닌지 같이 봐요.” 이 노인을 만날 때는 한참 국정농단으로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성공한 모든 자들은 청문회장에 있다고 그에게 농을 던졌고 그가 슬며시 웃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실패와 성공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했고,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팔자가 드세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노인들의 체념은 누가 그 기준을 정해준 것일까. 하루 종일 시끄러운 소리로 떠드는 미디어인가, 그들이 받았던 교육과 사회적 통념인가. 모두가 이병철처럼, 정주영처럼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고 권력과 적당히 결탁해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을 자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이 사회의 성공이라면, 이들은 모두 성공하지 못한 것이 맞다. 그러나 한 시절 열심히 살고 가끔 행복한 순간을 되새기며 그래도 그때는 좋았다고 회고할 수 있고, 지나간 시절을 되든 안되든 기록해보이겠다고 눈비를 맞아가며 초등학생용 공책을 들고 생애사쓰기에 모여오는 이 노인들의 삶이 과연 실패인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세상의 불평등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이들은 부조리와 국가의 폭력속에서도 진득하게 살아남았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노년을 맞이한 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은 성공이다. 돌아볼 용기가 있는자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확신한다. 생애사쓰기에 참가했다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풀었더니 여섯 살에 세상을 뜬 어머니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수업에 나올 수 없다며 울며 전화한 여성 노인이 있었다. 돌아보면 돌이 되리라. 그분은 해결하지 못한 빙벽을 만나고 만 것이다. 노인이 되었다고 풀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은 아니다.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한 것들은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돌덩이가 된다. 인간은 치유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한다. 대신 나누는 것이다. 글로 써서, 말로 풀어서, 기록으로 남기면 마치 내 과거의 일부분을 떼어 다른 종이에 붙이고 그 사연이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나를 짓누르는 바위덩어리를 응시하고 그 바위를 묘사하여 종이에 적는 일. 그래서 내 몸으로부터 떼어놓는 상징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도 여생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질 수 있다. 삶을 돌이키는 것은 정리하여 끝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번쯤 객관화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져오는 수확이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곡식을 잘 일으켜 세우듯이, 지지대를 받쳐 묶어주듯이,지나간 사연들을 어루만진다. 삶의 끝이 어디 있고 시작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 보는 것이다. 수고 많았다고. 잘 살아왔다고. 나를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2018년 8월. 글/ 이하나 조합원  

    handurae 작성일: 2018-09-05 조회:568

    <메멘토 모리> 어떤 삶들에게

      어떤 삶들에게 - 세 번째 공영장례 장마가 일찍 끝났다. 매년 폭염이 시작되는 7월은 가난하고 어려운 삶들에게는 더 힘든 시간이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포구 담당자였다. 이미 한 번 장례를 치러본 자치구다. 오래 지병으로 힘들게 살다 생을 마감한 이의 ‘그리다 추모서비스’ 문의였다. 백 어르신은 지난 7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대장암4기로 수술 받은 후 항암치료 중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사망했다. 고인은 생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죽음 준비를 했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면서도 햇볕을 쬐고 산책을 하며 삶의 의욕을 만들기도 했으나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 그간 깡통 캔과 파지 줍기, 헌옷을 모아서 빨아서 입거나 팔아 생활비로 충당했다. 그러던 중 몸이 자꾸 아파 검사를 하게 됐는데 대장에서 용종 2개를 발견했고 치료 과정에서 대장암 4기임을 알게 되었다. 건강이 악화되며 깡통 캔과 파지 줍기 등을 하지 못해 힘들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 매달 생계급여를 받아 병원비로 20-30만원을 지출하고 월세내고 나면 공과금과 생활비가 빠듯했기 때문이다. 형편이 힘들어지자 비용절감을 위해 공동생활 가정 입주를 안내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을 불편하게 할 것 같다며 거절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착하고 좋은 이로 기억한다. 월세를 싸게 해줘서 고맙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던 건물 계단청소와 집 앞 청소까지 스스로 하는 사람. 오빠가 있지만 장례 치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아픈 상태였고 동생의 장례를 챙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서울시의 ‘그리다’ 장례서비스를 알게되었다. 백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꽤 여러 날이 소요됐다. 사망 장소인 적십자병원에서는 그리다 추모서비스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행정절차상 복잡한 상황이 얽히면서 여러 날 고인을 안치실에 모셔두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서강동주민센터 담당 주무관이 꽤 여러 번 연락을 해왔다. 생전에 찾아봽던 어르신이고 꼭 장례를 치러드리고 싶다며. 한 사람의 결연한 의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포기하려는 마음을 접고 어르신의 장례를 위해 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고려해보았다. 장례식 준비와 행정절차 등을 모두 해결하고 그리다 추모서비스와 우리 조합의 후원으로 동부시립장례식장으로 이송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생전 어르신을 돌봤던 분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가족의 배웅 없이 치러졌지만 함께 했던 분들이 찾아왔고 오래 아프다 떠난 그가 영면하기를 기도했다. 열흘가량 어르신의 장례를 위해 마음을 썼던 것인지, 좋아했던 한 정치인의 안타까운 비보를 들었기 때문인지, 7월 23일 백 어르신의 장례를 치른 오후 슬픔에 젖어 있었다. 일면식 없는 이들의 죽음을 접할 때마다 삶을 돌아보게 된다. 걸어온 흔적과 나아갈 곳을 가늠하며.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과 만났던 시간에 대해서. 우리의 시간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대해. 죽음을 인식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내려다보는 일임을 잊지 않게 된다. 백 어르신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편히 잠드소서.

    handurae 작성일: 2018-09-04 조회:437

    <24%의 기적> ‘제2의 도약’을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 개최

    - 출자 증액과 조합원 배가 결의 지난 6월 23일(토) 오후 2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제2의 도약’을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는 서울시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초여름의 더운 날씨와 휴일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조합의 미래와 희망을 노래했다. 또한 출자금 증액과 조합원 배가운동에 적극 매진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서울조합․경기조합 합동으로 진행한 이날 행사는 우리 조합의 최대 현안인 15억원 자본금과 관련한 상황을 공유하고 출자금 증액과 조합원 배가를 통해 이를 해결하자는 의지를 모으는 자리였다. 2015년 정부는 상조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상조회사의 자본금을 기존 3억원에서 15억원으로 대폭 상향하였다. 이에 따라 2019년 1월까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한다고 한다. 우리 조합은 인적 결사체인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우리가 운영하는‘더불어삶 상포계’는 협동조합으로 운영할 수 없었다. 장례서비스는 현행법상‘선불식할부거래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선불식할부거래업은 상법상 회사(주식회사)만 가능하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2014년 7월,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가 전액 출자해 (주)한두레를 설립하였다. 그럼에도 우리 조합을 일반 상조회사처럼 도맷금으로 취급해 일괄규제하겠다고 한다. 협동조합은 자본금이 아니라 협동조합에 맞는 기준, 곧 출자금과 조합원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조합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제도 개선운동과 함께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회를 준비한 것이다. 임종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공동대표와 유영우 서울지역협동조합협의회 회장은 연대사를 통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불식할부거래업(상조업)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으로 척박한 토양에서 기적적으로 싹을 튀운 협동조합”이라며 “사회서비스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홀몸 어르신과 저소득층 장례를 선도하는 등 장례 영역에서 대안을 만들어온 모범적인 협동조합으로 사회적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두 단체는 이미 성명을 통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대한 일률적인 자본금 상향에 반대하며 협동조합에 적합한 기준을 마련하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1부 행사는 김상현 서울조합 이사장이 진행하였다. 김 이사장은 우리 조합이 그동안 진행해온 장례문화 개선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사회적 경제 영역을 고려하지 않은 선불식할부거래법의 한계와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출자금 증액과 조합원배가를 호소하였다. 2부 행사는 이창환 서울조합 부이사장이 진행하였다. 먼저 이상훈 서울조합 조합원이 나서서 우리 조합과 마을운동의 인연을 언급하면서 출자를 결의하였고, 이어서 홍정혜 경기조합 조합원이 나서서 적립금의 출자전환을 약정하였다. 이어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출자 약정이 이어졌다. 행사 중간에는 우리 조합의 눈부신 활동상을 담은 영상과 아산시 민간인 학살 지원 영상, 최재직 번역협동조합 사무국장의 찬조 공연과 인디밴드 ‘Easy FM’의 흥겨운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진행하였다. 조합원들은 합창을 하며 적극 호응하였다. 인근 호프집에서 이어진 뒤풀이에도 많은 조합원이 참석해 조합의 향후 과제와 전망에 대해 열띤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날 행사는 조합의 문제는 조합원이 해결하며, 어려움에 처한 조합은 조합원이 해결한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뜻 깊은 자리였다.   글/ 김경환

    handurae 작성일: 2018-07-05 조회:701

    <메멘토 모리>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아산시 민간인 희생자 유해 안치식

    유해가 실리기 기다리는 리무진 도열 장면 추모관으로 떠나는 유해들 다시,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68년만에 햇빛을 본 200여구의 여성과 아이들의 유해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트럭에 실려, 다시 못 돌아올 길을 떠난 그들. 총칼에 떠밀려 어두컴컴한 폐금광에 들어서면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은 푸른색이었을까, 잿빛이었을까. 공포와 분노, 슬픔과 눈물 속에 구덩이로 떨어지면서도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등에 업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총탄에 자신이 가슴을 내밀었을 것이다. 켜켜이 쌓이고 쌓인 주검들. 햇빛 아래 드러난 뒤엉킨 유해는 그날의 참상을 증거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그들을 겨우 부위별로 나누어 72개의 상자에 담았다. 낯설고 낯선 집, 수습된 유해와 유품은 지난 5월 14일, 세종시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추모관'에 임시 봉안될 예정이었다. 다시 트럭에 실어 보낼 수는 없었다. 유해는 말이 없다. 뼛속에 사무친 그 공포와 한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해는 울고 있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희생자들을 차마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꽃상여에 태워 보내지는 못할망정 그 대신 리무진 5대에 실어 보냈다. 그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였다. 아산시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5월 29일 오전 11시 아산시청 상황실에서 아산 배방면 설화산 일대에 대한 민간인희생자 유해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유해발굴은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 86-1번지 일대에서 지난 2월 20일부터 진행됐다 감식 결과 발굴 유해는 최소 208명에 이르고 유품은 551점으로 확인됐다. 희생자 중 12세 미만의 어린 아이가 58명에 달했다. 이중에는 영유아도 다수 포함돼 있다. 성인 중 68명은 부녀자였다. 희생된 성인 남성 중에는 60세 이상 노인들도 여럿이다. 유품은 비녀, 귀이개, 단추류, 버클, 고무신과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구슬 등이다. 특히 비녀가 89점이 발굴돼 희생자 상당수가 부녀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희생자들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학살됐다. 인민군에게 밥을 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가해 책임자는 경찰이다. 또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학살을 주도했다. 공동조사단은 보고서에서 “전대미문의 참상에 말문이 막혀버렸다”며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고 참담했다”고 썼다. 또 “발굴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증언과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심층적인 추가조사가 요구된다”며 “교육의 장으로 보존되고 활용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글/김경환   관련영상:

    handurae 작성일: 2018-07-05 조회:556

    <메멘토 모리 > 당신을 안전하게 건너가도록 하는 일

    - 두 번째 공영장례에 부쳐     빈소 앞의 유족 6월 28일 목요일 아침. 고인이 된 백 어르신의 추모식을 치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서울의료원 장례식장까지는 꽤 먼 길이다.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가면서 손에 땀이 찬다. 시간에 대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인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다른 결의 불안이 끼어든다. 만 5년 한겨레두레에 근무하면서도 타인의 죽음과 그들의 장례는 여전히 생소하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 것 마냥 현실감이 결여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죽는다는 것은 내 삶과는 유리된 채 저 너머의 일들로만 간주되고는 했으니까. 나는 며칠 전 이 세상에서 사라진 한 존재에 대해, 죽음은 언젠가는 내게도 올 일이라는 생각에 멈춰 선다. 아직 제물이 도착하지 않은 빈소 위에 두 개의 생화 바구니가 얹혀 있다. 고인의 영정 대신 위패가 생전 그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다. 백 어르신은 서울시 추모형 서비스 ‘그리다’의 두 번째 수혜자다. 죽은 사람이 무슨 혜택을 본다고 이런 표현까지 써야하나, 제의를 치르는 일에 수혜라는 표현이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몇 번 이런 일들을 진행하면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빈소 차림으로 드러내는 이별 의식은 고인이 된 이에게는 애도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위로를 전해주었다. 추모식 순서 중 유족과 한 끼 식사를 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흔쾌히 이 일에 함께 하겠다고 하는 곳은 없었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에 대해서 재료 준비와 가격에 대해 가늠해보면 선뜻 하겠다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충분히 그런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지속성을 갖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전화를 했던 ‘행복 도시락’에서 이 부분을 해결해주겠다고 흔쾌히 얘기했다. 신세지는 김에 나는 도시락과 두 가지 떡까지 부탁했다. 해결이 되면 전화를 주겠다는 영양사가 연락이 없었다. 애타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시장에 떡을 보러 갔어요. 빈소에 도착한 도시락과 두 박스의 떡을 보자 그만 울컥 밀려드는 감동을 추스르기 힘들어 호흡을 가다듬는다. 몇 통의 전화만으로도 내 진심과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훨씬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확신 같은 것, 제 일처럼 생각해주는 것, 그것은 굳이 쏟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누는 선한 의지 같은 것이다. 구순의 어르신이 떡을 떼어 입어 넣다가 운다. 그 안에 담긴 모두의 노고와 마음을 헤아려준 것이리라. 나는 목 놓아 우는 유족의 등을 가만히 쓸어 내렸다. 슬픔으로 북받치는 그 순간만큼 흠뻑 슬픔에 몸을 맡기도록 기다렸다. 백 어르신은 지난 6월 21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평소 순박한 성정의 그는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했다. 월급을 모아 없는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원단 공장에서 운전을 했었는데 바지런함이 몸에 밴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쉼 없이 제 몸을 놀리며 살았던,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향에 두 명의 누이가 살고 있지만 한 번 찾아간다고도 하고 한 번 만나러 온다고도 하면서 만나지 못하고 백 어르신은 먼 길을 떠났다. 누이도 먹고 사는 일이 고되니까, 그는 누이들에게조차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누이는 백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새벽차를 타고 빈소에 찾아왔다. 걸음조차 못 가누며 건강이 좋지 않은 구순의 노인들이 빈소 앞에서 오열했다. 아파도 생전 들여다보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유골이라도 고향에 가져가야겠다며 찾아왔다. 모든 존재는 유한성을 갖는다. 너도 나도 언젠가 유한함을 인정하는 날이 올 테니까, 그 순간 곁을 지켜줄 누군가 없다면 이 일은 그 곁을 지켜줄 사업이 된다. 서울형 추모 서비스 ‘그리다’는 아무런 제의 없이 떠나는 이들의 삶과 죽음이 너무 마음 아파서 시작한 일이다. 이별 의식도 없이 그냥 이 세상 떠나게 할 수 없어서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서울형 추모서비스 ‘그리다’사업에 합류했다. 이 사업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부금까지 더해 유족들 마음에 서운함이 남지 않도록 정성껏 추모식을 준비한다. 조합의 지향과 닿아 있는 일이기도 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조합의 의지를 실현하는 아름다운 사업이다. 며칠 전 가끔씩 나와 다정하게 전화를 주고받았던 조합원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삶과 죽음 사이 이별은, 인연을 끊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결별과 다르다. 그것은 결이 다른 존재의 형태를 갖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별 제의만으로 치러지고 마는 일로 감당하기 버겁다. 남아있는 이들이 무겁게 짊어졌다가 천천히 버리며 가벼워지는 짐 같은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백 어르신, 세상 어딘가에는 그가 살다간 시간의 궤적이 남았으리라. 누군가에게는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무지개 같은 존재도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백 어르신을 안전하게 저 세상으로 인도하고 돌아온다. 마음 속 깊이 그가 편히 잠들기를 기원하면서. 글/ 우은주

    handurae 작성일: 2018-07-05 조회:505

    <24%의 기적> 무연고 저소득층 장례 지원에 기부합니다

    봄볕처럼 따사로운 소식을 전합니다. 임종한 조합원(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이 무연고자와 저소득층 장례지원에 써달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4500만원을 기탁하셨습니다. 이 성금은 지난해 작고하신 고 임흥달 아버님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 전부입니다. 임 조합원은 "평소 홀로죽음을 맞이하는 어려운 이웃들의 장례에 써달라는 아버님의 유지에 따라 기부하게 되었다"며 "고독사와 무연고사 같은 쓸쓸한 죽음을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탁 받은 성금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 지정기부하였으며 무연고 저소득층 추모지원, 웰다잉 교육, 작은 장례조문단을 구성하는데 사용하고 본 사업의 의미를 담은 작은 책자 한 권을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김연순 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고인의 소중한 뜻을 따라 빈곤이나 고독으로 인해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시는 안타까운 일이 없도록 우리 이웃들을 돌보는데 잘 전달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정성을 다해 고인의 높은 뜻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handurae 작성일: 2018-05-04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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