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24%의 기적> 장례의 품격 2019-11-05 13:3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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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handurae |
조회 | 449 |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가 92세를 일기로 소천(召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애도의 마음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상주이자 현직 대통령인 그는 어떻게 장례를 치를까. 단순히 ‘장의업자’로서의 궁금증만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 조합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 하는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기대감보다 큰 것은 대통령의 모친상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새벽 “장례를 천주교 의식에 따라 가족, 친지끼리 치르려 한다”며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에서도 조문을 오지 마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국정을 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셨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고생도 하셨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모친의 마지막 모습을 전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다행히 편안한 얼굴로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을 저와 가족들이 지킬 수 있었다”고 썼다. 이어 “때때로 기쁨과 영광을 드렸을진 몰라도 불효가 훨씬 많았다. 특히 정치의 길로 들어선 뒤로는 평온하지 않은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제가 서 있는 것을 보며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셨을 것”이라며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님의 신앙에 따라 천주교 의식으로 가족과 친지끼리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며 “많은 분들의 조의를 마음으로만 받는 것을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그는 그대로 실천했다. 부득이하게 정당 대표, 종교계 지도자와 주한외교사절 말고는 일체의 조문을 사절하고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삼일장을 치르고 바로 국정에 복귀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장례는 권력(금력)의 크기와 비례하기 시작했다. 조화의 개수와 조문객의 숫자가 상주나 유족의 사회적 지위와 권세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장례를 앞둔 많은 이들이 초라한 빈소와 비용을 걱정한다. 상주는 접객을 하느라 바쁘고 애도와 추모를 허례허식이 압도한다. 지금의 장례에는 고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상주 얼굴만 보고 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 조합은 ‘의식은 간소하게, 애도는 깊이 있게’를 나침반 삼아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를 바꾸기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병원장례식장과 상조회사 중심으로 단단하게 짜인 상업적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은 조합으로서 현실의 벽 앞에 번번이 좌절하고 한계를 절감한 적도 많았다. 일례로 우리는 쓰레기 없는 장례를 실현하고 싶다. 장례식장은 일회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양산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 많은 화환은 또 어떤가. 많은 음식을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해야 이익을 보는 장례식장의 특성상 이 문제는 당장은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량의 그릇을 관리하기도 어렵고 설거지 시설도 마땅치 않다. 서비스 인력도 이를 꺼린다. 쓰레기 문제뿐 아니다. 최대한의 영리를 취하려는 병원장례식장과 상조회사 중심의 장례시스템 안에서는 ‘다른 장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고인에 대한 추억과 감사를 나누며 가족끼리 작고 소박하게 장례를 치를 수는 없을까. 꼭 3일장을 치러야 할까. 고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나 작은 음악회처럼 할 수는 없을까. 물론 기존 장례식장도 ‘작은장례’를 표방하거나 쓰레기 줄이기에 동참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보여주기식에 그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얼마 전 우리 조합에서 치렀던 한 장례가 떠오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모친상이다. 유 이사장의 어머니는 지난 5월 22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 이사장은 회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제 어머니가 여든아홉 해를 살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다”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보내드렸다”고 전했다. 이어 “저를 위로하러 오실 필요는 없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제 어머니를 생전에 아셨고, 꼭 작별인사를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굳이 오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서동필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꽃이나 조의금을 사양하기로 6남매와 함께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위로 말씀과 마음의 인사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의미 있게 꾸려나가자”고 적었다. 유 이사장 어머니의 장례는 일산의 한 작은 병원에서 치러졌다. 주변에서 서울의 대형병원 장례식장을 추천했지만 유족들은 완곡하게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조문객에게는 조촐한 다과가 차려졌다. 술과 밥이 없는 장례를 치른 것이다. 문상객에게는 자녀들이 어머니 눈물겨운 역정을 적은 <남의 눈에 꽃이 되어라>라는 문집으로 답례했다. 국적불명의 돈벌이 장례가 지속되면서 시민들 스스로 애도와 추모가 있는 품격 있는 장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병원장례식장을 거부하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일회용품 대신 재활용용기를 사용해 음식을 대접하고, 술과 밥 대신 다과를 내놓기도 한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조만간 큰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 시민들은 ‘아무도 해주지 않으니 우리가 한다’를 실천하며 스스로 장례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 조합은 좀 더 일찍 추모형 작은장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이런저런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2019년 1년 동안 치열하게 분석하고 고민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도는 해볼 만큼은 된 것 같다. 진정한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품격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고단하고 치열했을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품격있는 장례를 보고 치를 자격이 있다. 향기로운 장례의 풍경이 장엄한 저녁노을처럼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글/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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