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020년 1월, 창립 10주년을 맞이합니다. 자부심과 함께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협동으로 만드는 공동체 장례문화’를 기치로 내걸고 두 가지 목표 세웠습니다.
– 협동의 힘으로 직거래공동구매와 맞춤형 방식 장례를 치러 부패하고 혼탁한 장례시장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정화하자,
– 조합원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장례문화를 만들자.
이 두 가지 중 앞에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습니다. 우리 조합은 지난 10년간 전국 9개 조합 조합원 3500명 규모로 성장하였고 1500여 건의 장례를 애초 세운 원칙대로 차질 없이 진행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상조시장도 어느 정도 정화되었고, 저소득층과 무연고자 장례를 지원하는 ‘공영장례’ 실현에 기여하였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조합원과 공동체의 협동에 기반한 새로운 장례문화를 만드는 데는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외부적 환경이 녹록치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이 목표를 실현하는 총력을 모으려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칭 ‘2.0 시대’로 부르고 싶습니다. 더 좋은 제안을 기다리겠습니다.
2.0시대는 ‘의식은 간소하게, 추모는 깊이 있게’를 모토로 추모형 ‘작은장례’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장례시장은 철저히 서비스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병원(전문) 장례식장에서 상조(의전) 회사가 진행하는 대로 3일장(때로는 4~7일장)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외에 별다른 대안도,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장례가 이런 모습일까요. 우리는 이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몇 년 전 집수리협동조합에서 우리 조합 사무실 창문에 햇볕을 막기 위해 필름 붙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무사히 작업을 마치고 노동자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다 병원 이외의 장소에서 ‘작은장례’를 하고 싶다는 애기를 꺼냈는데…. 말없이 듣고 있던 60대 중반 노동자가 갑자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깊은 한숨처럼 사연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강남의 가난한 동네, 비닐하우스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병을 앓던 어머니가 자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황망한 와중에 그가 떠올린 것은 강남에서 제일 크다는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연락을 했고 앰뷸런스가 와서 시신을 옮겼고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3일 동안 빈소를 지켰습니다. 장례식장 직원들이 오가며 한마디씩 던졌습니다. 문상객은 없느냐. 밥은 안 시키느냐, 언제 나가느냐. 그는 그때의 그 직원들의 멸시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는 ‘밥 장사’가 되지 않은데 빈소를 차지하고 있는 그가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 노동자에게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그 비싼 병원 장례식장에 갔을까요. 어머니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조촐하고 편안하게 꾸며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 조합은 이제 그 대안을 만들고자 합니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초저출산국,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무연고 사망자 수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여성, 고령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상주들은 기존 3일장 중심의 장례를 버거워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이른바 ‘무연(無緣)사회’가 도래하였습니다. 무연고자의 대부분은 연고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 ‘죽음의 상인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망자는 계속 늘어 신생아 수를 앞지르더니 2020년에 30만 명을 넘어서고, 2060년이면 7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상조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고비용화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년 현재 상조회사 가입자는 540만 명에 이르며 시장규모도 6조 원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장례식장과 봉안당 등 묘지사업 분야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커질 것입니다.
3일장을 하루장이나 간소한 추모식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준비 없이 닥치는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 허례허식과 ‘보여주기’식 의식을 추모 중심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일회용품과 음식물 쓰레기가 없고 진심 어린 애도가 있는 장례를 할 수는 없을까. 2천여만 원에 육박하는 장례비용을 반값 이상으로 줄일 수는 없을까. 문화와 예술이 함께 하는 품격 높은 장례는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장례를 우리가 설계해서 치를 수는 없을까.
우리 조합이 이 물음에 답하겠습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바꾸겠습니다. 부담은 줄이고 존엄은 더하여 하고 싶은 장례, 매력적인 추모 장례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우리의 구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집니다. 먼저 채비, 죽음을 준비합니다. 웰다잉 아카데미를 운영해 죽음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기억노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겠습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하고 ‘나만의 장례식’을 설계하겠습니다. 사후가 아닌 생전 장례식도 가능합니다. 그 다음 장례, 애도와 위로의 의식을 치르려 합니다. 고인의 삶을 돌아보는 영상과 약전을 선보이고, 사진전이나 음악공연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과 친지 중심으로 품격 있는 추모식을 거행하고 다과를 나누겠습니다. 장례 이후, 추모와 치유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유족에게 힐링여행을 제공하고 ‘그리프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겠습니다. 기일이 돌아오면 간소한 추모식을 치르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로 설계하겠습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공간과 콘텐츠입니다.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추모식을 치를 만한 아름다운 공간을 하나씩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료와 돌봄, 공간과 문화 분야의 사회적경제조직들,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단체들과 연대하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조합원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2.0시대를 활짝 열기 위해 조합원 님의 지혜와 협력을 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장례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장례문화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글/ 김상현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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